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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는 마치니의 구호를 자기 입맛에 맏게 변형한 '황제들의 로마 이후에 교황들의 로마가 있었고, 이후에는 [[파시스트 이탈리아|파시스트 로마]]가 올 것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이를 [[제3의 로마]](Terza Roma)라 명명했으며, 위에서 언급한 SPQR을 각종 시설물에 써먹었는데 이 과정에서 [[반달리즘|도로 뚫는답시고 로마 시대 문화재를 때려부수고(...)]], 2차 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전했다가 깨지는 흑역사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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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이탈리아 공화국]]은 자국이 로마의 직접적인 후신이라 주장하거나 로마의 역사를 자국이 독점한다는 배타적인 주장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지만, 상당수 이탈리아인들이[* 모든 이탈리아인이 아닌 이유는 일부 지역에서는 통일 이탈리아 정체성을 거부하고 분리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는 이탈리아의 민족 정체성이자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역사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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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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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내셔널리즘|그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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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그리스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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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과 함께 [[동로마 제국]]의 유산을 자신들의 정체성 중심에 두고 있다. 동로마 제국은 원래 [[고대 로마]] 제국의 동부 행정구역이었으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천년 이상 존속하며 스스로를 ‘로마인의 나라’라 자처하였다. 제국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을 [[아테네]]가 아닌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고, 언어는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전환되었으며, [[정교회]] 신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명 체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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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리스]]는 [[고대 그리스]] 문명과 함께 [[동로마 제국]]의 유산을 자신들의 정체성 중심에 두고 있다. 동로마 제국은 원래 [[고대 로마]] 제국의 동부 행정구역이었으나,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천년 이상 존속하며 스스로를 ‘[[로마인]][[로마니아|나라]]’라 자처하였다. 제국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을 [[아테네]]가 아닌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고, 언어는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전환되었으며, [[정교회]] 신앙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문명 체계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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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그리스는 동로마 제국을 단순히 역사상의 제국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로 간주한다. 제국의 멸망 이후에도 그리스 지역의 주민들은 자신들을 ‘[[로마인]]’으로 인식하였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오스만 제국 지배하에서도 정교회를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특히 교회의 전례, 언어, 제도 등은 동로마 제국의 체계를 이어받았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그리스 정교회의 중심적 전통으로 존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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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그리스 왕국]]이 건국된 이후, 이러한 역사적 계승 의식은 더욱 뚜렷해졌다. 새로 탄생한 국가는 고대 그리스뿐 아니라 동로마 제국의 후예라는 자의식을 내세우며, [[메갈리 이데아]]라는 [[그리스 내셔널리즘|민족적 이상]]을 발전시켰다. 메갈리 이데아는 그리스인들이 과거 동로마 제국의 옛 영토, 특히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회복하고 통합하길 바라는 역사적·민족적 목표였다. 이 이념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그리스 외교와 군사 정책을 이끌었으며, 현실 정치에서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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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계승 의식은 상징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 1868년, 왕자 한 명이 태어났을 때, 많은 시민들은 그 이름이 ‘콘스탄티노스’로 정해지길 열망하며 이를 연호하였다. 이는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끝까지 지킨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에 대한 민속적 기억과 연결된다. 그리스 민간 전승에는 ‘한 명의 콘스탄티노스가 잃은 제국은, 또 다른 콘스탄티노스가 되찾는다’는 예언이 오랫동안 전해졌고, 이에 따라 왕자의 이름이 정해졌을 때 이를 제국 부흥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다. 이후 그는 콘스탄티노스 1세로 즉위하게 되었고, 국민들은 그를 통해 과거의 영광이 되살아나길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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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계승 의식은 상징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강하게 나타났다. 1868년, 왕자 한 명이 태어났을 때, 많은 시민들은 그 이름이 ‘[[콘스탄티노스]]’로 정해지길 열망하며 이를 연호하였다. 이는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끝까지 지킨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에 대한 민속적 기억과 연결된다. 그리스 민간 전승에는 ‘한 명의 콘스탄티노스가 잃은 제국은, 또 다른 콘스탄티노스가 되찾는다’는 예언이 오랫동안 전해졌고, 이에 따라 왕자의 이름이 정해졌을 때 이를 제국 부흥의 상징으로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다. 이후 그는 [[콘스탄티노스 1세]]로 즉위하게 되었고, 국민들은 그를 통해 과거의 영광이 되살아나길 기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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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의 통치 시기에는 메갈리 이데아가 절정에 이르렀으며, [[소아시아]] 원정과 이즈미르 점령 등 동로마 옛 영토 회복을 위한 시도가 본격화되었다. 비록 이러한 시도는 스미르나 전투 이후의 패배로 무산되었으나, 콘스탄티노스라는 이름이 지닌 역사적 상징성과, 동로마 제국의 계승자라는 그리스인의 집단 기억은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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