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r7 vs r8
......
1919
==== 미하일 7세의 치세 ====
2020
콘스탄티노스 10세 사후에는 어린 미하일 7세가 뒤를 이었다.
2121
22
콘스탄티노스 10세의 황후였던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는 어린 아들의 제위를 지키기 위해 본래 정적이었던 장군 로마노스 디오예니스와 재혼하여 공동 황제 로마노스 1세로 추대했고, 따라서 미하일 7세 재위 초반의 국정 운영은 로마노스 1세가 주도했다.
22
콘스탄티노스 10세의 황후였던 에브도키아 마크렘볼리티사는 어린 아들의 제위를 지키기 위해 본래 정적이었던 장군 로마노스 디오예니스와 재혼하여 공동 황제 로마노스 4세로 추대했고, 따라서 미하일 7세 재위 초반의 국정 운영은 로마노스 4세가 주도했다.
2323
24
1071년 로마노스 1세는 셀주크 제국에 맞세기 위해 출정했다가 제2차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황제 본인이 포로로 잡히는 대참패를 당하며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상실했고, 원로원이 그의 폐위를 결의하면서 본격적인 미하일 7세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24
1071년 로마노스 4세는 셀주크 제국에 맞세기 위해 출정했다가 제2차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황제 본인이 포로로 잡히는 대참패를 당하며 소아시아(아나톨리아)를 상실했고, 원로원이 그의 폐위를 결의하면서 본격적인 미하일 7세의 치세가 시작되었다.
2525
26
미하일 7세는 셀주크 제국에서 석방된 로마노스 1세의 복위 시도를 진압하며 권력 기반을 굳히는 듯 했으나 경제 정책 실패로 민심을 잃었고, 결국 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의 쿠데타로 실각하여 수도사가 되었다.
26
미하일 7세는 셀주크 제국에서 석방된 로마노스 4세의 복위 시도를 진압하며 권력 기반을 굳히는 듯 했으나 경제 정책 실패로 민심을 잃었고, 결국 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의 쿠데타로 실각하여 수도사가 되었다.
2727
=== 제위 상실 이후 ===
2828
==== [[콤니노스 왕조]] 치하 ====
2929
비록 미하일 7세는 실각했으나 여전히 정계에 암약하던 두카스 왕조의 종친들은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이사키오스 1세의 조카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가 니키포로스 3세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자 콤니노스 가문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