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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4 | 434 | 그러나 서방의 시선은 달랐다. 서유럽의 정치가와 지식인들은 동로마 제국을 ‘로마’의 합법적 계승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점차 강화하였다. 그들은 동로마 제국을 ‘그리스인의 제국’이라 지칭하며 로마적 정체성을 철저히 분리하려 하였다. 이는 단순한 언어의 선택이 아닌 정치적 전략이었다. 동로마 제국의 권위를 ‘로마 제국의 후예’라는 기반에서 끌어내림으로써, [[신성 로마 제국]]이 스스로를 ‘서방의 로마’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 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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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6 | 9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문필가 아인하르트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기를 반영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동로마 황제를 ‘로마 황제’로 호칭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스 황제’로 지칭하는 혼용된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 서방 내부에서도 동로마 제국의 정체성에 대한 일관된 이해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성 로마 제국과 서유럽 교회 세력은 동로마 황제를 체계적으로 ‘그리스 황제’로 지칭하는 외교 방식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언어 전략은 교황청이 로마 세계의 중심이자 정신적 권위의 수호자임을 내세우는 데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였다. | |
| 436 | 9세기 초, [[프랑크 왕국]]의 문필가 아인하르트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기를 반영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동로마 황제를 ‘[[로마 황제]]’로 호칭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스 황제’로 지칭하는 혼용된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는 당시 서방 내부에서도 동로마 제국의 정체성에 대한 일관된 이해가 형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성 로마 제국과 서유럽 교회 세력은 동로마 황제를 체계적으로 ‘그리스 황제’로 지칭하는 외교 방식을 확립하였다. 이러한 언어 전략은 교황청이 로마 세계의 중심이자 정신적 권위의 수호자임을 내세우는 데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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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8 | 438 | 동로마 제국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자신들이 정통 로마 제국임을 계속 강조하였다. 황제의 칭호뿐만 아니라, 황제의 즉위 의례, 법전 편찬, 교회와의 관계 설정 등 모든 측면에서 고대 로마의 유산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동로마 제국은 스스로를 단순한 옛 제국의 잔존 국가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로마로 간주하였다. 제국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을 ‘[[동로마인|로마인]]’이라 불렀고, 이 정체성은 제국이 최후를 맞는 15세기까지 유지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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