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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tablewidth=100%><width=30%><tablebgcolor=#fff,#1f2023> {{{#fbe673 '''인구'''}}} ||<-2><#FFF>16,000,000명 {{{-2 (457년)}}}[br]20,000,000명 {{{-2 (565년)}}}[br]7,000,000명 {{{-2 (775년)}}}[br]12,000,000명 {{{-2 (1025년)}}}[br]2,000,000명 {{{-2 (13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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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언어'''}}} ||<-2><#FFF>[[그리스어#s-2.4]] (공용어)[br][[라틴어]] (공용어, 7세기 초까지)[* [[헤라클리우스]]([[이라클리오스]]) 황제가 제국의 언어를 그리스어로 바꾸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도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제국 동방에서는 라틴어가 아닌 그리스어가 널리 쓰였다. 로마법 대전에서 라틴어가 쓰이는 등 동로마에서 라틴어의 지위는 결코 '외국어'가 아니었으나, 7세기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학술 분야에 쓰이던 라틴어는 교양 계층 간에서도 급속히 쓰이지 않았고 의례 부분으로 나타나는 정도였다.][br]기타 지역별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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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민족'''}}} ||<-2><#FFF>데모님(Demonym): '''[[동로마인|로마인]]'''[* 자신들을 '로마인(Ῥωμαῖοι {{{-2 로메이}}})'라고 불렀다.][br]개별 민족[* 특정한 민족만이 로마인을 구성한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다양한 민족들이 로마인 정체성으로 융화되었다.]: [[그리스인]], [[라틴 민족|라틴인]][* [[이탈리아인]] 등.], [[불가르인]]([[불가리아인]])[* 초기 불가리아의 지배층인 불가르인은 튀르크계였으나 이후 슬라브화되었다.], [[슬라브인]], [[튀르크인]],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아랍인]], [[페르시아인]], [[유대인]], [[누비아인|누비아계 흑인]], 기타 등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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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종교'''}}} ||<-2>[[칼케돈 공의회|칼케돈파 기독교]]-[[정교회]] {{{-2 (국교)}}}[br][[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 [[가톨릭|로마 가톨릭]], 그외 다양한 종교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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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종교'''}}} ||<-2>'''국교: [[[칼케돈 공의회|칼케돈파 기독교]] - [[정교회]]'''[br]비주류 종교: [[가톨릭]], 오리엔트 정교회(합성론), 단성론,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이슬람]], 기타 등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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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a00201> {{{#fbe673 '''정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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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tablewidth=100%><width=30%><tablebgcolor=#fff,#1f2023> {{{#fbe673 '''정치 체제'''}}} ||<-2><#FFF>[[공화주의|공화적]] [[전제군주제]]([[포티스]])[* [[로마 공화국|공화정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로마 고유의 전제정이었다.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거나 심각한 실정을 범할 경우 황제는 군단장이나 원로원의 반란을 직면해야 했으며 이렇게 새워진 왕조는 금방 시민의 인정을 받았으나 이전 왕조와 똑같은 한계를 지녔다. 동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의 통치를 신의 권위를 빌려 정당화하려 했으나 궁극적으로 동로마 멸망까지 이런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Anthony Kaldellis의 The Byzantine Republic은 황제를 제위 세습이 가능한 초강력 종신 대통령으로 기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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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국가원수'''}}} ||<-2><#FFF>(로마인의) 황제[br]([[임페라토르]],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칭호)|아우구스투스]], [[바실레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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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tablewidth=100%><width=30%><tablebgcolor=#fff,#1f2023> {{{#fbe673 '''정치 체제'''}}} ||<-2><#FFF>[[공화주의|공화적]] [[전제군주제]]([[도미나투스]])[* [[로마 공화국|공화정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로마 고유의 전제정이었다. 황제의 권력이 약화되거나 심각한 실정을 범할 경우 황제는 군단장이나 원로원의 반란을 직면해야 했으며 이렇게 새워진 왕조는 금방 시민의 인정을 받았으나 이전 왕조와 똑같은 한계를 지녔다. 동로마의 황제들은 자신의 통치를 신의 권위를 빌려 정당화하려 했으나 궁극적으로 동로마 멸망까지 이런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Anthony Kaldellis의 The Byzantine Republic은 황제를 제위 세습이 가능한 초강력 종신 대통령으로 기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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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국가원수'''}}} ||<-2><#FFF>[[로마 황제|(로마인의) 황제]][br]([[임페라토르]],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칭호)|아우구스투스]], [[바실레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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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a00201> {{{#fbe673 '''왕조'''}}} ||<-2><#FFF>[[콘스탄티누스 왕조]][br][[발렌티니아누스 왕조]][br][[테오도시우스 왕조]][br][[레오 왕조]][br][[유스티니아누스 왕조]][br][[이라클리오스 왕조]][br][[이사브리아 왕조]][br][[니키포로스 왕조]][br][[아모리아 왕조]][br][[마케도니아 왕조]][br][[두카스 왕조]][br][[콤니노스 왕조]][br][[앙겔로스 왕조]][br][[라스카리스 왕조]][br][[팔레올로고스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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