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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트족 및 게르만계 민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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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을 비롯한 게르만계 민족은 동로마 제국 역사 초기에 군사적 조력자이자 정치적 변수로 등장하였다. 이들은 대부분 용병 또는 연맹군(foederati)의 형태로 제국에 편입되었으며, 일부는 제국 영토 내에 정착하여 제한된 자치를 누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게르만계 집단의 존재는 제국 군사체제의 유연성과 외래 세력에 대한 실용적 수용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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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은 원래 발트해 남쪽에서 기원한 동게르만계 부족으로, 3세기 이후 남하하여 흑해 북방과 다뉴브 남쪽에 걸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서로마]]와 []동로마]] 양 제국의 국경을 자주 넘나들며 전투와 정착을 반복하였으며, 4세기 말에는 훈족의 침입을 피해 대규모로 도나우 강을 넘어 발칸 반도로 진입하였다. 동고트와 서고트로 나뉜 고트족 중 동로마 제국과 직접 접촉한 것은 주로 동고트 계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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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은 원래 발트해 남쪽에서 기원한 동게르만계 부족으로, 3세기 이후 남하하여 흑해 북방과 다뉴브 남쪽에 걸친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서로마]]와 동로마 양 제국의 국경을 자주 넘나들며 전투와 정착을 반복하였으며, 4세기 말에는 훈족의 침입을 피해 대규모로 도나우 강을 넘어 발칸 반도로 진입하였다. 동고트와 서고트로 나뉜 고트족 중 동로마 제국과 직접 접촉한 것은 주로 동고트 계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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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고트족과 동로마 제국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고트족 연합군은 당시 황제 발렌스를 전사시키며 제국군에 참패를 안겼고,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는 이들과 강화를 맺고 포에데라티[* 고대 로마와 동로마 제국에서 사용된 [[라틴어]] 용어로, 기본 뜻은 "조약에 의해 동맹된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이 용어는 특히 로마 제국이 외부의 이민족들과 맺은 군사 동맹관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로 받아들였다. 이 조약에 따라 고트인들은 제국군에 편입되어 일정 지역에 정착하며 자치를 허용받았고, 대가로 전시 동원을 수행하는 조건을 수용하였다. 이때부터 동로마 내에는 고트계 군인과 장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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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중엽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이후, 고트족과 그 외 게르만계 민족 대부분은 서방에 독자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일부 집단은 여전히 동로마 제국의 국경지대에 잔류하였다. 트라키아, 모이시아, 일리리아 등지에는 고트, 헤룰리족, 스키리족, 게피드족 등이 흩어져 정착하였고, 이들은 제국의 국경 방어를 보조하는 용병 또는 농촌 공동체로 존재하였다. 황제 조이노스는 재위 중 게르만계 용병들의 세력을 축소하고, 이사우리아나 아르메니아 출신 병사 등 자국민 중심의 군대로 군제 개혁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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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초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다시금 게르만계 용병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는 서로마의 옛 영토를 수복하려는 대외 정복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반달 전쟁과 고트 전쟁 등 서방 원정에 투입된 병력 중에는 고트족, 헤룰리족, 롱고바르드족 출신의 용병들이 포함되었고,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 같은 동로마 장군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전후 제국군에 흡수되거나 이탈리아와 발칸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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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초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다시금 게르만계 용병의 역량을 적극 활용하였다. 이는 서로마의 옛 영토를 수복하려는 대외 정복 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반달 전쟁과 고트 전쟁 등 서방 원정에 투입된 병력 중에는 고트족, 헤룰리족, 롱고바르드족 출신의 용병들이 포함되었고, 벨리사리우스와 나르세스 같은 동로마 장군의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전후 제국군에 흡수되거나 [[이탈리아]]와 발칸에 정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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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계 병사들은 군사 분야 외에는 제국 내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고트족을 비롯한 이들은 대체로 도시 외곽에 집단 거주하였고, 언어와 신앙의 차이로 제국 사회로의 동화가 더뎠다. 초기 고트인은 대체로 아리우스파 신앙을 고수하였고, 정통파 정교회를 믿는 제국 시민들과 종종 충돌하였다. 가이나스 사건처럼 아리우스 교회당 건축을 둘러싼 갈등은 종교적 불일치가 공동체 통합에 장애가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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