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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슬라브족의 약탈은 아바르족의 남하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아바르족은 중앙아시아에서 서진한 유목 민족으로, [[발칸 반도]]에서 세력을 넓히며 슬라브족을 끌어들였다. 아바르족은 7세기 초 이라클리오스 황제가 페르시아 원정에 집중하고 있던 틈을 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기도 하였으나, 제국의 반격으로 세력이 무너졌다. 이후 슬라브족은 단독으로 제국 영토 내에 정착하여 자립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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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중엽 성 키릴로스와 성 메토디오스 형제가 파견되어 슬라브어 전례와 문자를 정비하면서, 동로마 문명은 슬라브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불가리아와 세르비아에서는 [[정교회]]를 수용하고 제국의 문화적 전통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불가르족은 튀르크계 유목민 출신이었지만, 토착 슬라브인과 연합하여 불가리아 국을 세운 뒤 제국과 장기간에 걸쳐 대립하였고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수차례 군사원정을 시도한 끝에 동로마 황제로부터 차르 인정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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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중엽 성 키릴로스와 성 메토디오스 형제가 파견되어 슬라브어 전례와 문자를 정비하면서, 동로마 문명은 슬라브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불가리아]][[세르비아]]에서는 [[정교회]]를 수용하고 제국의 문화적 전통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불가르족은 튀르크계 유목민 출신이었지만, 토착 슬라브인과 연합하여 [[불가리아 제1제|불가리아 칸국]]을 세운 뒤 동로마 제국과 장기간에 걸쳐 대립하였고 동로마 상대로 수차례 군사원정을 시도한 끝에 동로마 황제로부터 [[차르]] 칭호를 인정 받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불가리아인의 차르일 뿐, 로마 황제는 아니라는 조건이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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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립된 불가리아 제1제국은 제국의 북방을 압박하며 수차례 전쟁을 벌였으며, 제국은 외교적으로 달래거나 군사적 원정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굴복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바실리오스 2세]]에 의해 1018년 불가르는 완전히 복속되었다. 하시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불가리아 제2제국으로 재건되어 동로마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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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립된 [[불가리아 제1제국]]은 제국의 북방을 압박하며 수차례 전쟁을 벌였으며, 제국은 외교적으로 달래거나 군사적 원정을 통하여 일시적으로 굴복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바실리오스 2세]]에 의해 1018년 불가르는 완전히 복속되었다. 하시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불가리아 제2제국]]으로 재건되어 동로마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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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족 외에도 북방 유목 세력인 페체네그족과 쿠만족은 발칸 반도로 남하하여 제국을 공격하였다. 특히 페체네그족은 제국의 가장 취약한 시기를 노려 대규모 침입을 감행하였고,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는 쿠만족을 동맹으로 끌어들여 레부니온 전투에서 페체네그족을 궤멸시켰다. 이후 이들 부족은 제국 내에 정착하여 병사, 용병, 정주민으로 전환되었고, 이들이 형성한 부대는 십자군 전쟁 시기 십자군의 호위를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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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세계와의 관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예는 동슬라브족의 국가인 키이우(키예프) 루스와의 교류이다. 루스는 초기에는 제국의 적이자 침입자였다. 북방에서 내려온 바이킹 지배층과 슬라브 대중이 결합하여 형성된 이들은 배를 타고 도하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였고, 키예프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는 불가리아를 공격했다가 동로마와 충돌하여 격퇴당하였다. 이후 루스는 점차 제국과의 외교 경로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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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 세계와의 관계에서 가장 상징적인 예는 동슬라브족의 국가인 키이우(키예프) 루스와의 교류이다. 루스는 초기에는 제국의 적이자 침입자였다. 북방에서 내려온 노르드인(바이킹) 지배층과 슬라브 대중이 결합하여 형성된 이들은 배를 타고 도하하여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하였고, 키예프 대공 스뱌토슬라프 1세는 불가리아를 공격했다가 동로마와 충돌하여 격퇴당하였다. 이후 루스는 점차 제국과의 외교 경로를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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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년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는 행정 개혁과 통치의 정당성 강화를 위해 기존의 슬라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도입할 결심을 하였다. 당시 고려했던 종교는 이슬람, 유대교, 서유럽의 [[가톨릭]], 동로마 제국의 정교회였다. 이슬람교는 술과 돼지고기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유대교는 예루살렘을 잃은 민족의 종교라는 점에서 신의 축복을 상실했다는 해석으로 기각되었다. 가톨릭과 정교회 중, 사절단을 동로마 제국으로 보낸 블라디미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엄과 하기아 소피아의 장엄함에 감탄한 사절들의 권고에 따라 정교회를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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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년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는 행정 개혁과 통치의 정당성 강화를 위해 기존의 슬라브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종교를 도입할 결심을 하였다. 당시 고려했던 종교는 [[이슬람]], [[유대교]], 서유럽의 [[가톨릭]], 동로마 제국의 [[정교회]]였다. 이슬람교는 술과 돼지고기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배제되었고, 유대교는 예루살렘을 잃은 민족의 종교라는 점에서 신의 축복을 상실했다는 해석으로 기각되었다. 가톨릭과 정교회 중, 사절단을 동로마 제국으로 보낸 블라디미르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위엄과 하기아 소피아의 장엄함에 감탄한 사절들의 권고에 따라 정교회를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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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바실리오스 2세 황제가 군사 귀족의 반란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블라디미르는 6천 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대가로 황제의 여동생 [[포르피로예니티]] 안나와의 혼인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반란 진압 이후 황제는 결혼 약속을 미루었고, 이에 분노한 블라디미르는 [[크림 반도]] 남부의 헤르소니소스[* 고대~코이네 그리스어 명칭은 케르소네소스.][* [[우크라이나]]의 도시 헤르손의 어원이 된 지역이지만, 오늘날의 헤르손이 아닌 세바스토폴에 위치했다. 이는 예카테리나 2세가 [[그리스 계획]]에 따라 도시를 건설할 당시에는 고대~중세 헤르소니소스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서 실제 헤르소니소스보다 한참 북쪽에 있는 지역에 동명의 도시를 건설한 것이 그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를 침공하여 점령한 뒤 결혼 이행을 압박하였다. 제국은 정교회로 개종하고 첩을 정리할 것을 조건으로 혼인을 허락하였고, 블라디미르는 988년 정식으로 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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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는 개종 이후 전 루스 영토를 순행하며 귀족과 백성들에게 집단 개종과 세례를 강제하였다. 이는 단지 종교 변화에 그치지 않고,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와 제국식 정치 문화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루스의 문명적 전환을 이끈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후 루스는 제국과 종교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일정 기간 동안 우호적 동맹국으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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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는 개종 이후 전 루스 영토를 순행하며 [[귀족]]과 백성들에게 집단 개종과 세례를 강제하였다. 이는 단지 종교 변화에 그치지 않고,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와 제국식 정치 문화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루스의 문명적 전환을 이끈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후 루스는 제국과 종교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었고, 일정 기간 동안 우호적 동맹국으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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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이 쇠퇴하던 14세기 무렵, 루스의 후계 국가인 모스크바 대공국은 제국과의 유대를 강조하며 정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였다. 직접적인 군사 지원은 어렵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대성당 수리비 명목으로 금전적 원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대는 훗날 [[러시아 제국]]이 자신을 '[[제3의 로마]]'로 자처하게 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으며,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정교회 보호와 동로마 계승이라는 명분을 활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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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로마 제국이 쇠퇴하던 14세기 무렵, 루스의 후계 국가인 [[모스크바 대공국]]은 제국과의 유대를 강조하며 정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하였다. 직접적인 군사 지원은 어렵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하기아 소피아(아야 소피아) 대성당 수리비 명목으로 금전적 원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연대는 훗날 [[러시아 제국]]이 자신을 '[[제3의 로마]]'로 자처하게 되는 이념적 기반이 되었으며,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도 [[정교회]] 보호와 동로마 계승이라는 명분을 활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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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동로마 제국과 슬라브 세계의 외교는 단순한 충돌과 동맹을 넘어서, 종교와 문화, 제국적 이상을 매개로 한 깊은 상호작용이었다. 이 관계는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정교회]]와 제국의 유산으로 오랫동안 슬라브 세계에 계승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동유럽 문화와 정치 정체성의 심장이 되어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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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라시아 유목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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