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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75 vs r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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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교회 간의 긴장은 일찍이 아카키오스 분열을 계기로 격화되었고, 이후 포티오스 분열에서는 총대주교 임명권과 교회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다. 이 두 사건 모두 단순한 교리적 이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교황이 서방 전체의 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주장하려는 데 반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는 동방 교회의 자율성을 고수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은 결국 1054년에 벌어진 상호 파문 사건으로 폭발하였다. 당시 교황 레오 9세의 사절단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하여, [[세계 총대주교]] 미하일 1세 케룰라리오스를 파문하고 성소 제단 위에 파문장을 올려두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다. 이에 대응하여 세계 총대주교 역시 교황 사절단을 맞파문하면서, 교회의 분열은 형식상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동서 교회의 갈등이 신학적 불일치만이 아니라, 황제권과 교황권이라는 정치적 대립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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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개된 [[십자군 전쟁]]은 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라틴 세계 간의 관계를 사실상 적대적 양상으로 고착시켰다. 특히 제4차 십자군은 서방과 동로마의 관계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평가된다. 원래 이 군사 원정은 이슬람 세력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계획되었으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개입으로 그 방향이 급격히 전환되었다.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 내 상업적 이권 확보와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벌이라는 대담한 선택을 하였다. 그 결과 1204년, 제4차 십자군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도시를 철저히 약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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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전개된 [[십자군 전쟁]]은 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라틴 세계 간의 관계를 사실상 적대적 양상으로 고착시켰다. 특히 [[제4차 십자군]]은 서방과 동로마의 관계에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평가된다. 원래 이 군사 원정은 [[이슬람]] 세력에 대한 공격을 목적으로 계획되었으나, [[베네치아 공화국]]의 개입으로 그 방향이 급격히 전환되었다. 베네치아는 동로마 제국 내 상업적 이권 확보와 정치적 영향력 강화를 위해,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벌이라는 대담한 선택을 하였다. 그 결과 1204년, 제4차 십자군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도시를 철저히 약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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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은 단지 제국의 수도가 무너진 사건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제국의 중심이자 심장부가 파괴되었고, [[라틴 제국]]이라는 새로운 정치체가 일시적으로 제국의 자리를 대신하였다. 이 사건은 동로마 제국의 정치적 권위와 국제적 위상을 결정적으로 훼손하였으며, 제국은 이후 니카이아 제국, 트라페주스 제국 등 여러 계승국으로 분열되었다. 제국은 1261년에야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수복하였지만, 이미 국력은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약화되어 있었다. 라틴 제국의 점령은 동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문화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으며, 제국 내부에서도 봉건적 분열과 반란이 빈번해지면서 통합된 제국의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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