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19 vs r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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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 100 | 1일 탑승객수가 평균 40만명, 연간으로 따지면 1억 4천여만명에 이르는데다가 자유석 기준으로 1만엔대, 1등석은 2만엔 달하는 비싼 운임까지 받기 때문에 [[JR 도카이]]는 보유 지선 길이도 JR 중에서 뒤에서 두 번째인 주제에 가끔은 '''7,000만 명의 수요를 커버하는 [[JR 동일본]]의 영업이익을 추월하기도 한다.''' 즉 도카이도 신칸센 하나로 JR 도카이는 명실상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철도회사가 되었다. 지금은 이 돈으로 경부고속선을 4~5개는 지을 수 있는 '''100조 원 단위의 예산을 들이부어가며''' [[츄오 신칸센]]을 짓고 있다. |
| 101 | 101 | == 열악한 선형 == |
| 102 | 전쟁 중 계획된 '''탄환열차 계획'''을 그대로 써먹었다. 선로 용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던 데다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는 구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타미역]]과 [[미시마역]] 사이의 신탄나터널은 놀랍게도 '''1941년'''에 착공되어 1943년 공사 중지 시점에는 어느정도 공사가 진행된 상태였다. 이 터널은 도카이도 신칸센 전용으로 결정되어 1959년 공사가 재개, 1964년에 완공된다.] 그럼에도 최소 곡선반경도 비교적 작은 '''R=2,500m''' 선이며[* 경부고속선 최소 곡선반경이 약 R=7,000m이며 강릉선, 중앙선 등 250km/h급 준고속선도 R=3,000m에 달한다. 철도동호인 단체한테 늘 까이는 호남고속선의 오송 드리프트조차도 최소곡선반경이 R=5000m로, 300km/h도 못내는 도카이도보다는 '''매우 준수한 편'''이다.] 성토구간이 전체의 53%를 차지하는 등 일본 제일의 고속철도 노선이라고 하기에는 '''선형이 심하게 나쁘다.''' 곡선이 많아 속도 제한 구간이 산재하는데 특히 '''[[아타미역]] 구간'''[* [[오다와라역|오다와라]] - [[미시마역|미시마]]]이 압도적으로 나쁘고 그 다음으로 [[기후하시마역|기후하시마]] - [[하마마츠역|하마마츠]] 구간의 선형이 나쁘다. 아타미역은 필수 정차역이 아닌지라 정차도 안 하는데 어김없이 열차들이 느려지는 아타미 드리프트('''185km/h''' 제한[* 실제로는 더 느린 '''160km/h'''급으로 통과한다. 185km/h는 최속달인 노조미 한정.], R='''1,500m'''[* 이 정도의 심한 곡선반경은 속도를 최대한 올려도 '''200km/h''' 남짓밖에 못 낼 정도로 고속선 치고는 상당히 느리고 열악한 편인데 곡선반경 안에 '''[[아타미역]]'''이 통째로 들어가 있어 더욱 느려졌다. 정차역이 건설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선로 캔트조정(기울기)이나 탈선방지용 가드레일 및 열차 자체의 틸팅 시스템을 최대한 이용한다 해도 240km/h가 한계점이다.])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있다. 이러다보니 최고속도 역시 열차 스펙과 별개로 300km/h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1992년 이후 270km/h에서 20년 이상 증속하지 못했으나 틸팅이 가능한 N700계를 개발 및 투입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285km/h까지는 달성했다. | |
| 102 | 전쟁 중 계획된 '''탄환열차 계획'''을 그대로 써먹었다. 선로 용지가 이미 확보되어 있었던 데다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는 구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아타미역]]과 [[미시마역]] 사이의 신탄나터널은 놀랍게도 '''1941년'''에 착공되어 1943년 공사 중지 시점에는 어느 정도 공사가 진행된 상태였다. 이 터널은 도카이도 신칸센 전용으로 결정되어 1959년 공사가 재개, 1964년에 완공된다.] 그럼에도 최소 곡선반경도 비교적 작은 '''R=2,500m''' 선이며[* 경부고속선 최소 곡선반경이 약 R=7,000m이며 강릉선, 중앙선 등 250km/h급 준고속선도 R=3,000m에 달한다. 철도동호인 단체한테 늘 까이는 호남고속선의 오송 드리프트조차도 최소곡선반경이 R=5000m로, 300km/h도 못내는 도카이도보다는 '''매우 준수한 편'''이다.] 성토구간이 전체의 53%를 차지하는 등 일본 제일의 고속철도 노선이라고 하기에는 '''선형이 심하게 나쁘다.''' 곡선이 많아 속도 제한 구간이 산재하는데 특히 '''[[아타미역]] 구간'''[* [[오다와라역|오다와라]] - [[미시마역|미시마]]]이 압도적으로 나쁘고 그 다음으로 [[기후하시마역|기후하시마]] - [[하마마츠역|하마마츠]] 구간의 선형이 나쁘다. 아타미역은 필수 정차역이 아닌지라 정차도 안 하는데 어김없이 열차들이 느려지는 아타미 드리프트('''185km/h''' 제한[* 실제로는 더 느린 '''160km/h'''급으로 통과한다. 185km/h는 최속달인 노조미 한정.], R='''1,500m'''[* 이 정도의 심한 곡선반경은 속도를 최대한 올려도 '''200km/h''' 남짓밖에 못 낼 정도로 고속선 치고는 상당히 느리고 열악한 편인데 곡선반경 안에 '''[[아타미역]]'''이 통째로 들어가 있어 더욱 느려졌다. 정차역이 건설되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선로 캔트조정(기울기)이나 탈선방지용 가드레일 및 열차 자체의 틸팅 시스템을 최대한 이용한다 해도 240km/h가 한계점이다.])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있다. 이러다보니 최고속도 역시 열차 스펙과 별개로 300km/h 달성이 어려운 상황이다. 1992년 이후 270km/h에서 20년 이상 증속하지 못했으나 틸팅이 가능한 N700계를 개발 및 투입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결과 285km/h까지는 달성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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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 | 104 | 이미 수도권 - 나고야와 수도권-오사카 구간의 신칸센 점유율은 80%를 한참 넘어선 상태이다. 그러나 선로용량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의 열차 투입이 어려우며,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 수도권 - 오사카 노선은 그럭저럭 버텨내는 중인데 열차표를 못 구한 수요가 항공으로 넘어오기 때문[* 덕분에 두 회사는 옛날엔 747-400D라는 국내선용 747을 투입했고, 2020년 현재는 777에 3-4-3 좌석배치로 500석을 깔고 투입시키고 있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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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 151 | 한때는 성토구간 지반 침하, 교량 균열 등으로 "신칸센이 정시에 도착하면 신문기사에 난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군데군데 서행운전을 했었다. 과도한 승객 수송으로 안 그래도 약한 노반에 계속 무리를 주었던 것. 그리고 도쿄 - 신요코하마 구간은 지연운행으로 시각표가 꼬여서 신요코하마에서 장시간 정차하는 상황이 밥먹듯이 일어났다.[* 이 구간은 도심구간이라 선형이 불량하고, 도쿄역이 터미널식의 역이었는데, 지금보다 당시는 승강장이 부족했기에 차량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차량기지 회송열차까지 고려하면 선로 용량이 넉넉한건 아니다.] 지금의 노반은 지속적인 개량공사로 탄생한 것으로, 승객이 적은 화요일 저녁부터 수요일 오전까지 매주 모든 열차를 운휴하고 무려 44회에 걸친 대보수공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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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 승차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재래선은 마르스를 사용해서 특급부터 침대열차까지 어느정도 전산화가 이루어졌지만,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처리용량이 초과되는 바람에 도카이도 신칸센은 일반 에드몬슨 승차권을 사용하게 되었다. 때문에 세계 최초 고속철도 개통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당시 역사 앞에는 이르게는 10일 전부터 자리를 깔고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에드몬슨 승차권은 하차시 개찰에서 회수하는 시스템이었으며 이에 따른 사전고지도 이루어졌으나, 이 경우 개통 당일 승차율이 대폭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회수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개통 당일 승차율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홋카이도 신칸센]]에서도 이에 관한 일화가 있다.] 이 당시의 표 중 하나가 하라철도박물관에 전시중이다. | |
| 153 | 승차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 재래선은 마르스를 사용해서 특급부터 침대열차까지 어느 정도 전산화가 이루어졌지만, 신칸센이 개통되면서 처리용량이 초과되는 바람에 도카이도 신칸센은 일반 에드몬슨 승차권을 사용하게 되었다. 때문에 세계 최초 고속철도 개통이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당시 역사 앞에는 이르게는 10일 전부터 자리를 깔고 표를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에드몬슨 승차권은 하차시 개찰에서 회수하는 시스템이었으며 이에 따른 사전고지도 이루어졌으나, 이 경우 개통 당일 승차율이 대폭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회수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개통 당일 승차율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홋카이도 신칸센]]에서도 이에 관한 일화가 있다.] 이 당시의 표 중 하나가 하라철도박물관에 전시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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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 | 155 | 건설에 막대한 건설비가 소요되었으며 당시 일본은 아직 명실상부 선진국이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채권발행 대신 세계은행 대출을 선택하였는데... 이러한 문제로 당시 총재가 사퇴했을 정도.[* 다만 이는 막대한 건설비에 대한 상환능력이 있다고 세계은행이 인정했다 볼 수도 있다. 1960년대 당시 한국도 포스코를 설립하고 싶어했으나 상환능력이 없다고 보아 대출을 거절한 사례도 있기 때문.] 게다가 일본은 동시기에 도메이고속도로 건설도 세계은행 융자에 의존했으며, 1950 ~ 60년대는 세계적으로 철도 수송이 퇴조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세계은행을 포함한 국제 경제계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은 간선철도를 대체하려면 120m 폭의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는 시산을 내밀어 세계은행을 설득했고, 이를 통해 실현된 신칸센은 철도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이카리 요시로(碇義朗) 저 '高速鐵道로 가는 길 : 日本新幹線의 經驗' 참고.(원제는 超高速に挑む―新幹線開発に賭けた男たち。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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