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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 39 | 대한제국의 피휘 법에 의하면 즉위와 동시에 이름을 외자로 개명해야 하나, [[태종(조선)|피휘 법을 없애며 개명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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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41 | == 생애 == |
| 42 | 1993년 3월 9일, [[숙정왕 | |
| 42 | 1993년 3월 9일, [[성조 이곤|성조 황제(당시 숙정왕)]]과 [[숙정왕비 오애순|숙정왕비 오애순(소현황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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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 일단 태어날 때부터 배경이 [[대한제국 황족의 암흑기 시대]]였어서 일단 아버지가 제주도로 강제 이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5년 [[연종]] 서거 이후 [[광종]] | |
| 44 | 일단 태어날 때부터 배경이 [[대한제국 황족의 암흑기 시대]]였어서 일단 아버지가 제주도로 강제 이주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5년 [[연종|제4대 연종 황제]] 서거 이후 [[광종|제5대 광종 황제]]가 황위에 오른 이후에도 [[제주도]]에 머물러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조용한 황족으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광종을 퇴위시킨 [[사대부]]들에 의해 아버지 성조가 황제로 옹립되면서 대한제국의 황태녀로 신분이 바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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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 46 | 아버지가 황위에 올랐어도 결국엔 실권은 전부 사대부들에게 있었다. 2014년 4월 아버지 성조가 양위를 하려 하는데, 사대부들이 극렬히 반대한다. 그 이유는 놀랍게도 혜종이 너무 똑똑하다는 까닭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위를 하겠다는 황제를 사대부들이 막을 명분은 전혀 없었고 2014년 8월 4일 대한제국의 7대 황제이자 첫번째 여제로 즉위한다. 사대부들은 실권이 없던 대한제국 황실을 그렇게 주시하지 않았으나, 혜종은 [[이세훈]] 숙청을 시작으로 여러 정치 공세를 벌여 황권을 되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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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54 | > 사신은 논한다. 인자(仁慈)하고 공검(恭儉)한 것은 천성에서 나왔으나 우유부단하여 아랫사람들에게 이끌리어 진성왕(甄城王)을 처벌해 남매간의 우애가 이지러졌고, 신비(愼妃)를 내치고 박빈(朴嬪)을 죽여 내명의 정이 없어졌으며, 복성군(福城君)과 당성위(唐城尉)를 죽여 황실의 은의(恩義)가 어그러졌고, 사대부들을 많이 실각시켜 주륙(誅戮)이 잇달아 군신의 은의가 아박해졌으니 애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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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56 | 위 내용과 같이, 사관 [[민인생]]은 정작 능력은 총명하고 누구보다 천재적이나 정작 본인이 본인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요약을 하자면 능력은 있으나 그 능력을 활용하고 결단력 있게 활용하지 못하여 실속이 없다는 뜻이다. |
| 57 | 그러나 실속이 없지 않다. 광종의 퇴위 이후 바닥까지 떨어졌던 대한제국의 황권을 다시 되찾았고 수많은 부패들을 척결했다. [[CraigTv]]는 혜종 시대 이래 못한 것들은 전부 대통령 탓이고 잘한 것은 전부 혜종이 했다며 칭찬했다. | |
| 57 | 그러나 실속이 없지 않다. [[광종|광종 황제]]의 퇴위 이후 바닥까지 떨어졌던 대한제국의 황권을 다시 되찾았고 수많은 부패들을 척결했다. [[CraigTv]]는 혜종 시대 이래 못한 것들은 전부 대통령 탓이고 잘한 것은 전부 혜종이 했다며 칭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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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59 | 무엇보다 칭찬받는 점은 대한제국 민주 정치의 독립성이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
| 60 | 60 | 광종 퇴위 이후 대한제국은 사대부들이 틈만 나면 정치에 끼어들여 난장판을 쳐놨는데, 혜종 즉위 이후 사대부들이 밀려나면서 국회가 사실상 황제 직속 기관이 되었지만 혜종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기관인 국회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대한제국 [[민주공화정]]의 실용성을 높였다. 그러나 [[12.3 내란]] 사태 당시에도 국회에게 판단을 맡기는등 너무 민주 정치 진영에는 신경을 안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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