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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비교)

r1 vs 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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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담양지역에는 추성군(秋成郡)과 율지현(栗支縣)이 있고 추성군은 예하에 지금 곡성군 지역인 과지현(菓支縣, 현 玉果)과 금성면 지역인 율원(栗原, 현 原栗)을 영속하며, 창평지역의 굴지현(屈支縣)은 기양현(祁陽縣)으로 개명되어 무주(武州)의 영현으로 나타난다. 한편 경문왕 8년(868), 왕의 발원에 의하여 건립되었다는 개선사(開仙寺)의 석등이 현재 남면 학선리에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 이 지역에 불교문화가 융흥(隆興)하였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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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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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23년(940)에 기양현(祁陽縣)이 창평현(昌平縣)으로 개칭되고 율원현(栗原縣)이 원율현(原栗縣)으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생기는데 추성(秋成)을 비롯하여 창평(昌平), 율원(栗原) 등의 여러 현이 무주의 영현으로 편제되는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 후 성종 14년(995) 추성군을 고쳐서 군사적 의미가 강한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鍊使)를 삼는 조처가 이루어지나 시행 10년만에 폐지되고 현종 9년(1018) 새로운 군현제도가 이루어진다. 이때 담양군은 나주목(羅州牧)의 속군(屬郡)이 되었으며, 원율현과 창평현도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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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23년(940)에 기양현(祁陽縣)이 창평현(昌平縣)으로 개칭되고 율원현(栗原縣)이 원율현(原栗縣)으로 바뀌는 등의 변화가 생기는데 추성(秋成)을 비롯하여 창평(昌平), 율원(栗原) 등의 여러 현이 무주의 영현으로 편제되는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 후 성종 14년(995) 추성군을 고쳐서 군사적 의미가 강한 담주도단련사(潭州都團鍊使)를 삼는 조처가 이루어지나 시행 10년 만에 폐지되고 현종 9년(1018) 새로운 군현제도가 이루어진다. 이때 담양군은 나주목(羅州牧)의 속군(屬郡)이 되었으며, 원율현과 창평현도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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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대에 이르러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명종 2년(1172)에는 담양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으나 고종 24년(1237) 원율현인(原栗縣人) 이연년(李延年)이 반란을 일으키자 율원이 폐현되는 등 여러번 강등을 거듭하나 공양왕 3년(1391)에 담양 감무(監務)가 원율현을 겸임케 하는 조처가 이루어진다. 한편 몽고침입기에는 몽장(蒙將) 차라대(車羅大)가 담양에 둔소(屯所)를 설치하고 주둔하는 등 담양이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금성산성(金城山城)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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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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