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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38 | == 역사 == |
| 39 | 39 | [[근세]]에는 조공미 수송선의 기항지로 발전하면서 [[메이지]] 시대에 5대 개항장 중 하나가 되었다. 동해에 접하는 일본의 항구 중 최대 규모로,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일본의 대(對) 조선 관북지방행 항로의 거점이 되었고 전후에는 [[재일교포]]의 북송항(北送港)이 되기도 하였다. 북일교역의 상징으로 유명한 만경봉호와 그 뒤를 이은 [[만경봉 92호]]도 일본의 대북제재 전까지 니가타-[[원산항]] 노선을 운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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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 태평양전쟁 당시에 [[히로시마시|히로시마]]의 다음 원폭투하지로 [[기타큐슈시| | |
| 41 | 태평양전쟁 당시에 [[히로시마시|히로시마]]의 다음 원폭투하지로 [[기타큐슈시|코쿠라]], [[나가사키시|나가사키]], [[교토시|교토]]와 함께 거론되었지만 교토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수도여서 두고두고 원한을 살거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제외되었고, 니가타는 곡창지대여서 전후의 곡물자급에 어려움을 겪을것이라는 의견 때문에 제외되었다. 결국 코쿠라가 제1표적, 미쓰비시 조선소가 있는 나가사키가 대체표적으로 선정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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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43 | 이에 대해 다른 설이 있는데, 니가타가 표적으로 떠오른 이유는 [[동해]]의 접수를 위해서였는데 투하시점에 이미 일본 해군전력이 거덜나 버렸기 때문에 후보지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니가타 외에도 관동지방에 있는 곡창지대로도 미곡 수급은 가능했으며 당시에는 방사능의 위험도 몰랐던 때이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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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 그러나 2018년, 미국의 원폭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공문서 중 당시 기밀 자료였던 '글로브스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원자폭탄 투하 제3 목표지가 니가타와 | |
| 45 | 그러나 2018년, 미국의 원폭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공문서 중 당시 기밀 자료였던 '글로브스 문서'를 분석한 결과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원자폭탄 투하 제3 목표지가 니가타와 코쿠라 중 한 곳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니가타가 코쿠라와 함께 핵폭탄을 기적적으로 맞지 않았다지만,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에 대한 [[고인드립]]이 될 수 있어 니가타가 운 좋게 원폭을 맞지 않았다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고 슬쩍 넘어가는 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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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47 | 지진에 따른 액상화 현상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1964년 니가타 지진 때였다. 당시 시나노 강을 매립해 지어진 아파트나 빌딩이 주로 넘어지듯 붕괴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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