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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비교)

r3 vs r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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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귀족 자작]][[분류:서울특별시 출신 인물]][[분류:제주 고씨]][[분류:급진개화파]][[분류:1849년 출생]][[분류:1916년 사망]][[분류:독립협회]][[분류:종3위]][[분류:조선의 역관]][[분류:고영희 가문]]
2
[include(틀:다른 뜻, other1=애니메이션 캐릭터, rd1=고영하(히카루의 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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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062861> '''{{{#eccd7a [[조선총독부|{{{#eccd7a 조선총독부}}}]] [[중추원(일제강점기)|{{{#eccd7a 중추원}}}]]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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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dth=450><table align=right><tablebordercolor=#292929><colbgcolor=#292929><colcolor=#fff> '''{{{#fff 조선귀족 남작[br]{{{+1 고영희}}}[br]高永喜 | Go Yeong-hui}}}''' ||
54
|| '''이름''' ||<colbgcolor=#fff,#1f2023>고영희 (高永喜) ||
......
3635
== 기타 ==
3736
* 장남 고희경(1873~1934)과 손자 고흥겸(1893~1939) 모두 [[일제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였기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후손]]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 등을 [[국가]]에 몰수당하게 된다. 고희경의 후손들은 선조의 친일 행각을 인정하고 고희경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매각한 대금 4억 8천여만 원을 국가에 반환하기도 하였다.[[https://www.nocutnews.co.kr/news/651739|#]] 그러면서도 고영희의 증손자 [[고중덕]]은 조상의 토지를 되찾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https://www.law.go.kr/LSW/detcInfoP.do?detcSeq=17620&mode=0|해당 재판의 판결문]]]
3837
*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그의 조카다. 중부(仲父) 고영희와 달리, 예술인인 고희동에게는 특별한 친일행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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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하(히카루의 바둑)]]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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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고영희, version=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