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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류:1494년 출생]][[분류:1547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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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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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요 ==
6프랑수아 1세(François I, [[1494년]] [[9월 12일]] ~ [[1547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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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제9대 국왕이다. '기사 왕(Le Roi-Chevalier)'이자 '문예의 아버지(Père des Lettres)'라는 별명답게 프랑스에 [[르네상스]] 문화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군주로 평가받는다. 중세적 봉건 국가에서 근대적 절대 왕정으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이끌었으며, 당시 유럽의 패권을 놓고 [[신성 로마 제국]]의 [[카를 5세]], [[잉글랜드]]의 [[헨리 8세]]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특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초빙하는 등 예술 후원에 앞장서 프랑스 문화의 전성기를 여는 초석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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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생애 ==
11[[1494년]] [[9월 12일]] 프랑스 코냐크에서 앙굴렘 백작 샤를의 아들로 태어났다. [[1515년]] [[1월 1일]] [[루이 1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직후 [[이탈리아 전쟁]]에 뛰어들어 마리냐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1525년]] [[2월 24일]] 파비아 전투에서 카를 5세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석방 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1세]]와 동맹을 맺는 파격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고, [[1539년]]에는 '빌레르코트레 칙령'을 통해 프랑스어를 행정 공용어로 확립했다. 말년까지 예술과 건축에 매진하며 샹보르 성 등을 남긴 그는 [[1547년]] [[3월 31일]] 랑부예 성에서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