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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r3 Bl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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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류:1865년 출생]][[분류:1945년 사망]][[분류:조선의 인물]][[분류:대한제국의 인물]][[분류:일본 귀족원 의원]][[분류:조선귀족]][[분류: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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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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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요 ==
5좌옹 윤치호(佐翁 尹致昊, Yun Chi-ho, [[1865년]] [[12월 26일]] ~ [[1945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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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의 정치가,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이다.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독립협회]] 회장직을 맡아 민권 운동을 주도하고 [[대한민국 애국가]]의 유력한 작사자로 거론되는 등 초기에는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러나 일제의 압박과 인종주의적 냉소주의에 빠지며 변절하여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하는 오점을 남겼다. 그가 남긴 《[[윤치호 일기]]》는 당대 사회상을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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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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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65년]] [[12월 26일]] 충청도 아산에서 태어난 그는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 유학을 떠나며 근대 문물을 접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거쳐 개화파의 핵심 인물로 부상했으며,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독립협회를 이끌며 민중 계몽에 힘썼다. [[1911년]] '[[105인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른 뒤 전향하였고, [[1920년대]]부터는 교육 사업과 [[YMCA]] 활동에 전념하며 실력양성론을 주장했다. [[1930년대]] 말부터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지지하는 등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보였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일본 귀족원]] 칙선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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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9일]] 개성 고려정에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