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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목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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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蕭樂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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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생몰년도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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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 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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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 [[자(이름)|자]]는 규자(閨子), 동해군(東海郡) 난릉현(蘭陵縣) 중도향(中都鄕) 중도리(中都里) 출신으로 [[동진]]의 [[관료]]이며, [[남제]]를 세운 [[소도성]]의 조부, [[소승지]]의 부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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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 == 생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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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 소악자의 조부 [[소할]]과 부친 [[소준(동진)|소준]]은 [[영가의 난]]이 일어나자 강을 건너 진릉군(晉陵郡) 무진현(武進縣) 동성리(東城里)로 이주하였다. 이후 강을 기점으로 본토인이 강의 반대편, 소씨 가문을 비롯한 이주인이 본토에 정착하여 남난릉군(南蘭陵郡)이 되었다. 이후 소악자는 동진의 보국장군부참군(補國將君府參軍)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 소승지는 [[유송]]의 우장군(右將君)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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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 478년 [[송순제]]에 의해 태상(太常)으로 추증되었고, 479년 손자 소도성이 남제를 건국하자 태상부군(太常府君)으로 추존되어 [[칠묘]]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소악자는 3남을 낳았으며 장남 소봉지(蕭奉之)는 유송의 서평군태수(西平郡太守)를 지냈다. 차남은 [[소승지]]로 [[소도성]]을 낳았으며 남제가 건국되자 제선제(齊宣帝)로 추존되었다. 3남은 소원지(蕭爰之)로 유송의 원외랑(員外郎)을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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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 [[분류:칠묘 배향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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