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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류:서로마 제국]]
2[include(틀:로마의 역사)]
3[목차]
4== 개요 ==
5395년 동서 로마 분열 이후부터 476년까지 [[로마 제국]] 서부를 지배하며 존속했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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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엄밀히 말하면 당대에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이라는 국호는 사용된 적 없고, 당대인들은 하나의 로마 제국이라고 인식했으나 오늘날에는 관용적인 표현으로 굳어진지 오래인데다 시대 구분상 필요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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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역사 ==
9=== 테오도시우스 왕조 ===
10==== 테오도시우스 1세의 사망과 동서 분할 ====
11==== 호노리우스 ====
12==== 호노리우스 사망 직후의 혼란 ====
13==== 발렌티니아누스 3세 ====
14=== 최후의 순간 ===
15====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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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비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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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권신 리키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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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아비투스를 살해하고 집권한 ~~서로마판 최충헌~~권신 플라비우스 리키메르는 자신이 직접 제위에 오르지 않고 태생적 로마 시민인 허수아비 황제들(마요리아누스, 리비우스 세베루스, 안테미우스, 올리브리우스)를 차례로 옹립하며 전횡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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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권신 군도바두스(군도바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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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리키메르 사후에는 그의 조카 군도바두스(군도바트)가 정권을 승계했는데, 군도바트는 서로마 군부의 수장인 동시에 갈리아 남부의 게르만 왕국인 부르군트 왕국의 군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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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군도바트는 삼촌이 옹립했던 황제 올리브리우스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허수아비 황제 글리케리우스를 옹립하며 전횡을 일삼았으나, [[동로마 제국]]이 이탈리아 원정을 단행하자 서로마에서의 정권 유지를 포기하고 본거지인 부르군트 왕국으로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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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율리우스 네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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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와 제국의 멸망 ====
25475년 율리우스 네포스를 축출한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직접 제위에 오르지 않고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황제로 옹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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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그러나 오레스테스는 자신이 고용한 게르만족 용병 오도아케르와 갈등을 빚다가 집권 1년만인 476년 쿠데타에 직면했고, 수도 라벤나가 오도아케르군에 함락당하며 본인은 패사하고 아들은 폐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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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이때 오도아케르는 이전의 게르만족 권신들이나 오레스테스처럼 허수아비 서로마 황제를 옹립하지 않고 이탈리아의 왕을 칭했기에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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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다만 아직 건재한 [[동로마 제국]]까지 상대할 힘은 없었기에 서로마 황제의 관과 예복을 동로마 황제 제노에게 바쳤는데, 제노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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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멸망 이후 ===
33==== 구 서로마 세력의 부흥운동 ====
34===== 율리우스 네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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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폐위되어 서로마 본토에서 축출된 이후에도 달마티아 일대에서 세력을 유지하던 율리우스 네포스는 오도아케르 정권에 맞선 항쟁을 지속했으나 481년에 암살당했고, 그 직후 오도아케르는 달마티아 원정을 단행하여 네포스의 부관 오비다가 이끌던 서로마 잔존 세력을 격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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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시아그리우스의 수아송 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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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갈리아 북서부의 노비오두눔(수아송) 일대에서 잔존 서로마군을 규합한 시아그리우스 세력, 이른바 수아송 왕국은 제국 본토가 멸망한 476년 이후에도 10년 가까이 버텼으나 486년 수아송 전투에서 클로비스 1세의 프랑크 왕국에 패하며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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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이후 시아그리우스는 서고트 왕국 치하의 갈리아 남부로 도주했으나, 서고트 왕실은 그를 프랑크 왕국으로 송환하여 487년 프랑크인들에게 살해당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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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이렇게 시아그리우스 본인은 비참하게 사망했으나 그의 일가족만큼은 멸족을 피하고 프랑크 왕국에서 귀족 신분을 인정받아 8세기까지 대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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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무어-로마 왕국 =====
43로마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인들이 세운 여러 국가 또는 정치 집단을 총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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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이들은 서로마의 북아프리카 영토를 재패한 반달 왕국에 맞서 끈질기게 저항을 이어갔고, 동로마 제국의 고토 수복에도 협력하여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나, 지방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동로마 중앙정부와 대립하다가 강제 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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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동로마 제국의 고토 수복 운동 ====
47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동로마 제국은 본격적인 국토 수복을 진행하여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을 정벌하고, 그 여세를 몰아 동고트 왕국 치하의 이탈리아와 서고트 왕국 치하의 이베리아 남부까지 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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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그러나 예상치 못한 역병으로 인해 이탈리아 수복 과정이 20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쏟아부으며 고전했고,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이탈리아 영토는 랑고바르드족의 남하로, 이베리아 남부 영토는 서고트 왕국의 반격으로, 북아프리카 영토는 이슬람 제국의 팽창으로 인해 대부분 상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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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이에 동로마 정부는 남은 이탈리아 영토를 라벤나 총독부로 재편하며 방어선을 유지하려 했으나 그나마도 751년 라벤나 함락으로 실패했고, 남이탈리아 영토만이 1071년까지 제국령으로 남아있었다.